나의 아들은 자폐가 있다.
진단을 받을 때까지는 아무도 자폐가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폭력성이 조금 있고, 자해를 하는 경향이 있는 보통 아이인 줄 알았다.
호명 반응은 잘하진 않았지만, 까치발로 걷거나 손을 팔락거린다던지 하는 증상은 없었다. 장난감을 줄지어 세우기, 회전하는 물체에 관심을 과하게 보이기, 빙글빙글 돌기등은 보통 아이들도 종종 하는 시기가 있다면서 나는 나를 안심시켰다. 심지어 또래 이상으로 영특한 느낌이었다.
만 2살 때 이미 알파벳 26자를 대문자와 소문자를 모두 읽을 수 있었고, 홀수와 짝수를 나눠서 구별할 줄 알았다. 색깔, 태양계의 8 행성의 이름을 다 외우는 것은 물론, 도형의 이름까지 모두 외웠다. 도형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간단하게 세모, 네모 정도가 아니라 7 각형이라던지 9 각형 또는 10 각형까지 구분할 수 있었고, '평행 사변형'과 '사다리꼴'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3살에는 가르치지 않은 단어들도 읽어 냈다. 자기가 뜻을 알던 모르던 상관없이 알파벳이 갖고 있는 발음 (Phonics)를 갖고 단어의 발음을 유추해서 읽는 것이다.
4살이 되면서는 숫자를 배수로 세고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했고, 5살이 된 지금 심지어 간단한 곱셈까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2살쯤 우리는 아이가 말이 점점 늦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고, 아이가 쳐다보거나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길 싫어했다. 뭔가 원하면 아빠 손을 끌고 가서 아빠의 손을 이끌어서 잡는다는 걸 알았다. 아이는 말을 문장으로 하지 않았고, 유튜브에서 본 만화의 노래와 대사들을 그대로 외워서 전혀 의미 없는 혼잣말을 했다.
뭔가 이상한걸 눈치채고 행동 발달 전문가와 화상미팅을 준비했고, 그녀는 대뜸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 나이 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
3살이 됐을 때 우리는 다른 행동 발달 전문가에게 보였다. 의사는 "필리핀의 코로나 기간의 락다운은 유래가 없이 길었고, 이게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무게감이 있는 이야길 하나 했다. "자폐라고 진단을 받는 순간 이 아이는 평생을 자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아이가 필요한건 '도움'인거지 '자폐'라는 명찰이 아닙니다."
그 말이 후 나는 아이가 '정상일지도 몰라'라는 생각 자체를 멈췄다. '정상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야? 정상이면 내자식이고 아니면 내 자식이 아닌 거 아니잖아? 그래. 이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야.'
그렇게 생각을 시작하자 내가 아이를 바라보던 시선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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