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유치원(킨더) 과정은 2년 의무교육이다. 유치원을 졸업(?) 했다는 증명이 없으면 초등학교 입학 시에 조금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만 4~5세가 된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널서리(어린이집) 나 프리킨더를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킨더가 시작하는 시간은 대략 7시 반에서 8시쯤 된다. 부모들이 일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은 맡기고 가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너무 이른데?'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유치원과 아주 먼 관계로 (40Km 떨어져 있다.) 집에서 유치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이다. '왜 그렇게 멀리 다녀?' 궁금하실거다.
동남아에서 아이의 학교 선택은 '아이의 인생이 달려 있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교육'과 '좋은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동남아 공립학교에서는 기대하기 조금 힘들다. 그래서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나 국제 학교'를 찾는 부모가 많다. 이런 형태의 사립 학교나 국제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학교에 있다, 즉 아이는 그 학교에 입학하면 이변이 없는 한 고등학교까지 쭉 다니는 경우가 꽤 있다.
또 학교에 '러닝 서포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자폐아 아이는 아무래도 다른 또래의 아이들보다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유치원 선생들이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으니까 아이를 전담하는 선생이 하나 더 붙어야 한다는 거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이나 간식을 먹거나, 수업 시간에도 집중을 못 하는 아이를 위해서 '돌보미 선생'이 한 명 더 붙는 거다. 사실 선생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유치원 교육을 공부한 '선생'이 아니라 특수 교육을 전공한 '치료사'다. 경력에 따라 다르지만 학비 외에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들은 입학 기준도 까다롭고 대기 줄도 길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는 이미 정원이 꽉 찬 상태라 "올해 말에 입학 원서 다시 내 보시고 내년을 기대하세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즉, '러닝 서포트 시스템이 잘 갖춰진 좋은 학교 중에 지금 당장 갈 수 있었던 학교'가 지금 아들이 다니는 학교 하나밖에 없었던 거다.
자 그럼 생각해 보자. 7시 반에 유치원을 가기 위해서 집에서 정말 늦어도 6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 하지만 40킬로나 되는 거리에 교통 상황이 항상 좋을 순 없다. 그러니 아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6시다. 최대한 아이를 늦게 깨울 수 있는 시간은 5시 40분 정도... 상상해 보시라. 곤히 자고 있던 아이를 아침 5시 반에 깨워서 학교 갈 준비를 시켜야 한다. 거기다가 아이는 우리 부부 침대에서 같이 자는데 애 엄마는 더 자다가 출근해야 하니까 아이가 울거나 칭얼 대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깨워서 아이 방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난이도는 극상이지만 요즘은 "아빠 졸려, 아빠도 더 자."라고 하는 아들을 보면서 '일찍 깨워야 함에 안쓰러움'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라는 것에 대견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깨운다.
오늘은 집 근처 Taal 화산에서 나온 재 때문에 마닐라 하늘 전체가 뿌옇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면 대략 7시. 아이를 선생 손에 맡기고 "아빠는 밖에서 기다릴게."를 해주면 아이는 교실로 들어간다. 하원 시간은 오후 2시 반. 하지만 아이는 '언어 치료와 행동 치료 센터'를 일주일에 4번 간다. 수목금토...
치료센터 이동 시간은 대략 한 시간쯤... (거리가 먼 게 아니라 차가 많이 막힌다.) 치료 시간도 매번 1~2시간...
아이의 일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한 시간. 아침 6시에 나가는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대략 저녁 5~6시가 된다. 하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피곤한 스케줄이다. 하지만 치료를 멈출 수도 없고, 유치원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는 엄청 피곤해 한다는 거다. 아이는 이제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게 느껴진다.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빠, 부릉부릉" 차 타고 가자는 거다. "운전대" 아빠 보고 운전하라는 거다. 하지만 "아빠가 밖에서 기다릴게."라고 하면 체념한 얼굴로 "아빠 안녕. 이따 봐"라고 이야기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얼마 전에 선생을 물었던 사건도 어느 정도 이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다음 날 간 치료 센터에서도 자기를 1년 넘게 가르쳐 온 선생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발로 찬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 주일이니까 아이는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하다."라는 게 치료사와 나의 합의(?)였다. 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속으로는 '너무 힘든 일정인 거 같다.'라는 생각은 들지만 또 '안 할 수는 없다'라고 마음을 독하게 먹어 본다. 모든 부모가 아이에게 더 좋은 걸 주지 못해서 미안할 테고, 더 편하게 못해줘서 미안하겠지.
자폐아 교육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테라피 버닝"이다. 아이가 나아지길 바라는 부모는 아이를 치료 센터에 보낸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를 가르치는 학원을 보내는 거라고 보면 되는데, 아이가 너무 많은 학원을 가면 무리가 되듯이 치료 센터도 마찬가지다. 급한 마음에 너무 많은 치료 센터를 보내면 좋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리 아들에게 지내는 일정이 과연 아이에게 좋은 행동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는 지켜보자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빡빡하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다. 꼭 부모의 욕심 때문에 벼랑으로 몰아세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또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는 하루에 대부분을 어린이집에 있거나 돌봄의 손길을 받아야 할 거다. 다른 게 있다면 내 아들은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는 거? 정답은 없을 거다. 사람마다 상황도 다 다르고 아이의 상태도 다 다르고... 하지만 속으로는 다음번 의사와 면담을 할 때 의사가 "아 하루 12시간은 너무 길어요. 치료 센터 중에 하나는 그만두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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