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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의 부모되기

너그러움과 받아들이기...

필리핀은 아이를 키우기에 별로 좋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특히나 도시에 산다면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있을까? 싶다.

우선 필리핀은 1년 내내 더우니까 낮에는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시키지 않다가 해 질 녘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해서 대략 한두 시간? 정도 뛰어노는 게 다다.

날씨가 덥지 않다고 해서 갈 곳이 있는 건 아니다. 작은 동물원이나 아무것도 없는 놀이동산 등이 있긴 하지만 사실 한국에 비해서 시설이 워낙 열악해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다. 그런데 하나 한국보다 많고 시설이 좋은 곳이 있다면 바로 야외 수영장이다.

대부분의 콘도는 (한국으로 말하면 아파트) 수영장이 부대시설로 붙어 있다. 빌리지 들도 마찬가지다. 너무 저렴(?) 한 빌리지가 아닌 이상에야 많은 빌리지들이 수영장이 부대시설로 갖추어져 있다. 콘도나 빌리지에 살지 않는 경우도 동네 찾아보면 한두 채 정도 되는 자그마한 ‘이름만 리조트’인 시설들이 꽤 있어서 한국보다는 그나마 쉽게 수영장을 접할 수 있다.

                                                          아이와 갈 수 있는 수영장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갈 곳이 많지 않으니 시간이 나면 수영장을 데리고 간다. 아들의 유치원이 방학이다? 일주일에 3~4번씩도 간다.

예전에는 깊은 성인용 풀만 있고 키즈풀은 아직 만들고 있었던 콘도에 살았다. 튜브를 타기 싫어했기 때문에 내가 안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수영을 했다.

지금은 빌리지로 이사를 해서 근처에 있는 수영장을 다니고 있는데 이곳은 키즈 풀이 아주 근사하게 잘 되어 있다. 수영이 자폐아에게 아주 좋은 운동이라는 연구 결과들도 있으니 아빠는 '시커먼스'가 되더라도 갈 곳이 없으면 역시 수영장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는 물에서 놀면서 노래를 끊임없이 불렀는데 문제는 입에 물이 들어가도 노래를 부른다는 거다. 아이가 자폐라는 걸 인정하기 전에는 “입 다물어. 제발 입다물어 입 좀 다물어...” 당연히 입을 다물 리 없었고, 나는 그게 너무 약이 올라서 아이를 혼내준 적도 있었다.

자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아이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다. 그 생각의 전환 하나 때문에 아이에게 더 너그러워지는 거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증상들을 찾아본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오!! 우리 아들과 같은 증상을 갖고 있는 아이가 있어!!” 이러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리스트에 추가를 하기 위해서다.

다른 아이의 증상을 찾아보는 건 생각보다 중요했고 내 이해의 폭을 넓게 해줬다. 내가 가르침으로 가르칠 수 있는 부분과 내가 받아들임으로써 '고치기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알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물론 모든 부분을 다 고쳐 나갈 수 있다고 믿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그게 고쳐지지 않을 때의 느껴지는 좌절감은 생각보다 크다. 이건 '애가 말을 안 듣는다'라는 개념과는 좀 다른 거다. 애는 이 부분을 고칠 수가 없는 거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갖고 있지만, 장애로써 받아 들여야 하는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부모는 아주 금방 멘탈이 바사삭하고 부서진다는 걸 느낄 거다. 이게 중증 자폐와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될 거 같은데 왜 안되냐!!

아이에 따라서 아주 천천히 바뀌기도 하고 전혀 바뀌지도 않을 수 있다. 부모들이여, 우리는 마라톤보다 수천 배는 긴 경기를 시작했다. 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