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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의 부모되기

자폐가 있는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

와이프가 엄청난 여행광이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는 것을 평생 꿈꿨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몇 년 동안 우리는 집안에서만 살았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필리핀은 코로나 판데믹 기간 2년 정도 18세 미만이 집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응급 상황이 아니면 아이는 절대 밖을 나갈 수 없었다.

판데믹이 끝나고 나서 우린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하듯이 여행을 갔다. 필리핀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아주 긴 연휴가 있는데 '부활절''크리스마스'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게 거의 1주일가량을 문을 닫는다. 그러니 그때를 이용해서 여행을 가는데 연차 휴가 등을 이용하면 10일 이상 휴가를 가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특별한 날이 하루 더 있다. 바로 '생일'이다. 생일 때가 되면 휴가를 쓰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 엄청 많다. 하다못해 최소한 동네잔치 정도로 생일 파티는 해야 하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일 년에 3번 정도 '정기 해외여행'을 간다. 부활절, 생일, 크리스마스... 하지만 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멀리까지 가서 돈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가... 총각 시절부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게 아이가 만 3살이 되기 조금 전부터였는데, 아이랑 여행을 시작하면서 '더 별로다'라는 생각이 든다.

첫 한국 여행 때였다. 여차저차 출국장에서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필리핀 공항에 협소한 라운지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인 다음 비행기 탑승을 위해 이동하려는데 아이는 그곳에 있고 싶었는지 뻗대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이동이라 벨트로 유모차에 묶어 놓지 않았더니 아이는 유모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발로 유모차를 세우고 울기 시작했고 그걸 달래느라 진땀을 빼며 허둥지둥 대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한국 젊은 남성 2명은 대놓고 키득거렸다. 그들이 입고 있던 옷차림이나 체형, 반팔 사이로 보이는 문신은 그들이 뭐를 하는 사람들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가뜩이나 아이와 실랑이로 민감해진 나는 대뜸 "이게 웃겨요?" 하고 쏘아붙였다. '뭐?? 왜? 해보자고? 이 XX 새끼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기분이 확 나빴지만 뭐 내가 어쩌겠나? 그냥 넘어가야지.(그래 쫄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폐일 가능성이 크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는 '내가 아이를 버릇없이 잘 못 가르쳤구나.'라는 생각 반, '첫 여행이니 아이도 날카롭겠지'라는 생각 반이었다. 귀가 아플까 봐 준 쪽쪽이를 열심히 빨면서 아이는 비행기 안에서 잠들었고 한국에 도착해서는 그 망할 코로나 검사 때문에 아이는 잠에서 깨야 했다. 잠결에 코를 쑤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한국 여행 내내 아이는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고생을 했고, 유일하게 먹는 "마리"라는 비스킷과 "프렌치프라이"를 주식으로 한국 여행을 버텼다. 오죽했으면 한국 안에 있는 필리핀 식당에 가서 필리핀 국 '시니강'을 사 먹였을까...

                            친구가 한국에서 하는 한옥 펜션에 갔을 때... 아들은 이날 과자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이후 모든 해외여행에서도 아이는 음식을 먹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만 어려운 게 아니다. 아이는 새로운 것을 보는 것에도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싱가포르 유니버설 스튜디오? 유모차 안에서 잤다. 싱가포르 동물원? 코끼리 한번 보고 한 시간 만에 나왔다. 홍콩 디즈니랜드? 그 유명한 "It's small wolrd"와 기차 딱 두 개의 어트랙션을 타고 나왔다. 도쿄 디즈니랜드? 이때는 "It's small wolrd" 외에 배도 한번 타고 기차도 한번 탔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한 개의 어트랙션을 타고 세서미 스트리트를 한번 둘러 보고 나왔다. 한국 롯데 월드, 코엑스 수족관? 말해 뭐 하겠는가. 방콕, 세부, 보라카이... 뭐 정말 열심히도 여러 곳 여행을 갔지만 필리핀 국내를 제외하고는 음식 먹이는 게 너무 힘들었고 아이는 무조건 유모차를 타고 다니려고 했다.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평상시에 엄마보다 아빠와 함께 붙어 있던 아이다 보니 모든 걸 다 아빠가 한다. 특히나 한국 여행에서 한식에 익숙지 않은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한국에서 음식을 찾는 일은 굉장히 어렵다. 누구 한 명의 입맛만 생각할 수 없다. 국을 싫어하는 부인과 국이 있어야 먹는 아들... 국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국을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번엔 먹었던 국을 이번엔 안 먹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여행을 갈 때마다 음식과 일정, 모든 게 외줄을 타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하지만 안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 날 아이와 같이 갔던 아침 고요 수목원이라든지, 유튜브에서만 보던 "It's small world"를 탔을 때라든지... 좋다는 자기 기분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들이지만, 눈을 반짝이며 신나 했던 몇몇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거기다 억지로라도 새로운 음식을 도전할 때, 아이가 처음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다가도 입맛에 맞아서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정말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엄청난 기쁨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음식들은 내 아들의 취향을 알아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아들은 자기가 익숙한 환경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걸 찾아내는 걸 좋아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자폐아들은 그 본성이 극단적으로 발현이 된다는 게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환경을 차단한 채 자기가 아는 환경 안에서만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새로운 걸 경험해서 자극을 주는 것이 좋을까? 이는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다. 아이는 좋다 싫다를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싫어하는 게 너무 뻔하지만, 또 뭔가 변한다. 아이가 정상적인 생활의 범주 안에 들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제공해 주고 싶다. 아이가 변하는 게 보이니까!!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와이프가 있으니까!! 난 올해도 여행을 가기 위해 가방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