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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의 부모되기

사랑 받는 아빠!!

자박 자박... 새벽 3시 반 뭔가 수상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올 것이 왔구나!!’

대략 한 달쯤 됐을까?

만화에서 보던 2층 침대에서 자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낮잠을 잘 때 자기 방에서 자는 훈련을 시켜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 폭탄선언을 한다. ”Sleep here"라면서 자기 방에 있는 자기 2층 침대를 가리켰다. 그래서 첫날은 내가 아들과 함께 작은 싱글 침대에 같이 껴서 잤다. 둘째 날이 되자 'Daddy gp out!!"라고 하더니 아빠를 방 밖으로 쫓아내고 유모와 자기 시작했다.

아이가 잠을 험하게 자는 편이기 때문에 ‘좌 아빠 우 엄마 룰’을 꽤 오래 지켜 왔다. (아기 때 침대에서 몇 번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잠을 깊게 자본적이 없다. 애가 움직이거나 이불을 걷어차면 일어나서 아이의 위치를 옮겨 주거나 이불을 덮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 전문의는 7살까지는 같이 재워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었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마음에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아이가 아직 5살이라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했다.) 밤마다 아들과 생(?) 이별을 하게 됐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눈을 뜨자 아들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Let's go to bed"이라고 하더라....

나는 자다가 일어나서 속절없이 아들 방에 부름을 받고 아들 방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유모를 쫓아낸 아들은 나랑 나란히 자기의 그 좁은 이층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아들과 이렇게 나란히 누워서 꽁냥 거린다.

 

"It's time to sleep."이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이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있다는걸...

"Cave"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동굴인 척하는 놀이를 한 1~20 분 정도 했다. 그러고는 나름 자려고 노력을 하는듯하면서 아빠랑 꽁냥 꽁냥 하더니만 4시 반쯤 되자 자기를 포기하고 일어나서 자기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는 밤에 깨우면 안 되는 사람인 걸 알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여태까지 항상 그래 왔다. 일을 하느라 피곤한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항상 새벽에 우유를 타줬고, 기저귀를 갈아 줬으며 다시 졸릴 때까지 항상 옆에 있는 존재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다.

그렇게 5시 반이 되자 아이는 다시 졸려서 칭얼 거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아이에게 교복을 얼른 입힌 후 차에 태웠다. 어차피 6시면 학교를 가기 위해서 출발해야 하니까 차라리 차에서 재우고 학교 앞에 가서 기다리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다. 아이는 차에 탄 지 5분도 안 돼서 잠들었다.

그렇게 한 3~40분 정도를 더 자고 에너지를 120% 충전한 아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나랑 다시 놀았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기 전 사전 워밍업이다. 예전에는 교실 앞 홀에 있는 장난감들을 갖고 놀더니만 요즘은 운동장에 푹 빠져 있다. 그렇다고 운동장에 있는 다른 놀이 기구를 갖고 노는 것은 아니고 한국의 “땅따먹기” 와 비슷한 “hopscotch” 판위에서 깽깽이 와 모둠발을 바꿔 가며 다른 아이들이 하고 노는 걸 따라 해보려고 한다.

땅따먹기와 비슷한 "Hop scotch"

일반 학교에 적응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됐다. 물론 걱정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이는 나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전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변한 모습을 아빠에게 마음껏 보여 주고 있는 거다.

아빠가 차에 탈때까지 저기서 저렇게 바라보고 있다. 볼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바쁜 엄마는 못 보지만 아빠는 마음껏 아들의 어린 시절을 만끽하고 있는 거다. (와이프에게는 미안하지만, 나 자신은 엄청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전교생이 얼마 안 되는 작은 학교라서 그 사이에 얼굴을 익힌 학부형들도 꽤 있다. 그들은 나를 볼 때마다 "네 아들 봐봐. 세상 귀엽게 생겼어.”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고 간다.

“이제 교실 들어갈 시간이야.”라고 하면 아이는 순간 멈칫한다. 'Daddy drive the car. Vroom Vroom. Kimchi drive the car. Vroom Vroom." 아빠 따라가겠다고 울상이 되지만 “김치는 교실에 들어가고 아빠는 밖에서 기다릴 거야."라고 잘 타이르면 바로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서서 아빠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다. 아이를 놔두고 돌아서는 부모들은 그 마음이 어떤지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밤에 깨서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아빠라는 거, 침대에 누워서 같이 투닥 거릴 수 있는 사람도 아빠라는 거, 자기가 보는 유튜브에 나오는 노래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빠라서 아빠랑 노래 부르는 게 가장 좋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가 아빠 사랑해라고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자기가 먼저 와서 뽀뽀해 준다고 얼굴에 침 발라 놓고 ”i love you"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아빠 하는 게 정말 감사하다.

김치야 아빠도 사랑해!!

덧붙이자면 내가 새벽에 애 방에 가서 같이 침대에서 뒹굴 걸렸다고 하면 애 엄마가 섭섭해하기 때문에 애 엄마에겐 그냥 5시 반까지 놀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