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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의 부모되기

작은 기적. 큰 기쁨

우리 아들은 펜을 잡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모두 싫어한다, 일반 학교로 옮기면서 그게 얼마나 마음에 걸렸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뭔가를 그려서 선물도 할 것이고, 뭔가를 적어서 소통을 하기 시작할 텐데...

거기다 내 아들의 발달 전문의는 주먹 쥐듯이 펜을 잡는 건 두 살 때 끝내는 것들이고 5살이 되면 펜 파지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아이를 도와주는 도우미 선생님 (러닝 서포트)를 쓰고 있는 상황이 좋은 점은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가에 대한 피드백을 매일 받을 수 있다는 건데 러닝 서포트는 메신저를 통해서 오늘 하루 교과 과정과 있었던 특이 상황에 대해서 나름 상세하게 보내준다,

교과 과정 중에 ‘파닉스‘ (Phonics) 시간이 있다. 기본적인 어휘와 발음을 배우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글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야무지게 펜을 잡고 'Web' 거미줄이라고 쓴 겁니다.

오 마이 갓!! 아들은 어설프게나마 펜을 잡고 글을 썼다. 아니 그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림도 그렸다. 물론 선생이 도와준 부분은 티가 나기 마련이지만 펜을 잡았다는 자체가 아주 큰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teacher's day를 맞이해서 아이가 집에서 준비한 선물을 보시라!!

이거 하는데도 엉엉 울면서 했다.

색 지정이야 내가 해주긴 했지만 아들은 태극기에 자기 나름대로 색을 칠했다. 대략 30초 정도 걸렸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는 없었지만,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다.

아이가 1살 때부터 커다란 크레용을 손에 쥐여 주고 어디든 낙서를 하게 시켰지만 아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펜 잡기를 싫어했는데 그 4년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대견하다는 간단한 단어로는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뭔가 조금씩은 변해 간다. 그 작은 변화가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미 2살 때 끝마쳤을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들은 5살이 되어서야 이제 하기 시작했다. 이게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게 자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하지만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 수도 없는 시간을 가르쳤는데 언젠가는 하기 시작할 때... 다른 부모들의 수십 배는 더 오랜 시간을 가르쳤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 감동이나 그 성취감이 훨씬 크다는 게 정말 크게 다른 점이다.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인 첫걸음을 걷는 순간을 매번 느낄 수 있다.

나중에 내가 여든이 되어서 내 아들이 삐뚤 삐뚤 "Daddy I love you." 만 적은 종이를 주더라도 아마 같은 느낌이리라....